역사여행 이봉창 의사 사형, 박열 의사가 옥고를 치룬 이치가야 형무소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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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여행.


이봉창 의사 순국, 박열 의사가 옥고를 치룬 이치가야 형무소를 가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번 일본여행에서 갔다온 어떻게 보면 역사여행이기도 했던 이봉창 의사 사형 그리고 박열 의사가 옥고를 치룬 이치가야 형무소가 있던 곳을 방문했던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제가 이곳을 알게 된 것은 서경덕 교수님의 글을 보고서 알게 되었답니다.

서경덕 교수님와 함께하는 해외 독립유적지 탐방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고 이번 일본여행에서 이곳을 방문하면 의미가 있을거 같아 위치를 알아보고 방문하게 되었답니다. 


역사여행 이봉창 의사 순국지, 박열 의사가 옥고를 치룬 이치가야 형무소.

이치가야 형무소는 이봉창 의사가 순국한 곳이며 동시에 박열 의사가 옥고를 치룬 곳이기도 합니다. 현재 이치가야 형무소는 사라지고, 그 자리는 조그마한 공원으로 조성이 되어있는데요. 사진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원이 마련되어있습니다. 


공원 구석에 옛 형무소임을 알리는 刑死者慰靈塔 (형사자 위령탑) 이라 적혀 있는 비석이 남아 있으며, 그나마 이것도 따로 안내판이 존재하지 않기에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정도로 구석에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이봉창 의사와 박열 의사 이 두 분은 어떤 독립운동을 했나요?

A. 일왕에게 폭탄을 황족과 내각 총이대신, 조선총독 등을 폭살하려고 폭탄을 구하다.

이봉창 의사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사쿠라다몬 앞에서 일왕의 행렬에 폭탄을 투척하여 검거되었고,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하였습니다. 


박열 의사는 1923년 9월 부인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일본 왕태자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일황을 비롯하여 황족과 내각 총리대신, 조선총독 등을 폭살하려고 폭탄을 구하러 중국 상해로 김중한을 임무를 주어서 보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붙잡히게 됐습니다. 이 사건으로 1926년 2월 대심원 판결에서 소위 대역죄로 무기징역을 받았으며,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뤘습니다. 


이봉창 의사가 순국 박열 의사가 옥고한 장소. 쓰레기 옆에 위치해 씁쓸.

이 문제는 2016년 5월 25일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팀에 의해 알려진 내용인데요. 신주쿠 구청 안내판 뒷면에 이치가야 형무소 및 위령탑에 관련한 역사적 사실 즉 이봉창 의사가 순국했으며 박열 의사가 옥고 했다는 내용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된 안내문구 설치를 추진한다고 했지만, 아쉽게도 이번에 방문했을 때 딱히 달라진것이 없었으며, 여전히 그 상태로 방치되어있다는 점에서 정말 안타깝고 씁쓸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번에 방문했을때 누군가 그들을 위해 사탕을 올려놓고 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하고 친구들은 절을 드리고 왔으며 다음에는 한국에서 술을 사가서 부족하지만 독립운동가들에게 한 잔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역사여행으로 반드시 이봉창 의사가 순국했던 장소인 이치가야 형무소를 갈 수 있어서 좋았고, 힘들겠지만 신주쿠 구청과 협의를 하여 이곳에서 순국한 분들을 위한 안내문구를 빨리 설치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면 이만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으며, 좋은 하루 보내시고 다음에도 더 좋은 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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